소니와 젠하이저, 겨울 ‘귀마개’ 전쟁의 서막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두터운 옷을 여미는 모습에서 이제 겨울의 문턱 앞에 서 있음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겨우살이 준비로 분주해 지는 것은 뜨끈한 오뎅 국물에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분식 마차만이 아니다. 다른 계절보다 겨울 수입이 쏠쏠한 헤드폰 업체들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발에 땀나도록 뛰어야만 따스한 겨울을 보낼 수 있어서다. 때문에 소니와 젠하이저 같은 오디오 업체들이 하루 차이로 헤드폰 신제품을 공개한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올 겨울 장사를 위한 시작 버튼을 누르는 중요한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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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니와 젠하이저는 제품의 방향이나 마케팅 규모에서 많이 다르다. 하지만 10월 16일에 기자간담회를 연 소니가 ‘아이유 헤드폰’ 키워드 하나로 단번에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젠하이저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인상이다. 과거 타이거 JK와 윤미래와 같은 뮤지션의 헤드폰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던 소니가 이번에는 아이유를 통해 대중적 관심을 끌어 낼 수 있는 좋은 한 수를 던진 것이다. 물론 소니 헤드폰을 귀에 감은 아이유의 음악성을 의심할까봐 유희열을 곁에 둔 것은 소니 코리아의 영리한 선택이라는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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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소니가 아이유와 유희열 조합만 믿고 엉성한 제품을 밀어내려는 것은 아니다. 소니는 지난 해부터 고품질 음악을 즐길 수 있는 HRA(High Resolution Audio) 제품군에 집중해 왔다. 눈을 빡빡 씻고 봐도 만만한 가격표를 붙인 제품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오디오 마니아들이나 좀더 좋은 소리를 듣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이들의 귀를 만족시킬 제품들을 해마다 꾸준히 소개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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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MDR-Z7(69만9천원)과 MDR-1ADAC(39만9천원)를 소니 헤드폰의 투톱으로 내세웠다. 다소 무겁게 보이나 막상 귀에 얹었을 때 편안한 느낌인 MDR-Z7은 오케스트라 사운드처럼 음악적 공간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70mm 다이내믹 드라이버로 소리의 왜곡을 최소화하고 알루미늄 코팅 액정 폴리머 진동판으로 반응 속도와 정확성을 높였단다. 고음과 저음, 강한 소리와 약한 소리, 음량의 정도에 따라 각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를 뇌속에서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은으로 코팅된 기본 케이블, 밸런스드 연결 케이블 외에도 킴버 케이블과 협업으로 만들어낸 전용 오디오 케이블을 고를 수 있고, 자연음에 가까운 DSD 5.6MHz 음원까지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한 모바일 앰프 PHA-3(109만원)와 좋은 짝을 이룰 때 모든 능력을 꺼내놓는 플래그십 헤드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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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R-1ADAC는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하는 DAC를 품은 헤드폰이다. 따로 앰프를 쓰지 않아도 스마트폰과 같은 재생 장치의 음원을 손실 없이 헤드폰으로 전달해 그 소리를 좀더 깨끗하게 증폭해 들을 수 있다. 이 헤드폰은 조금 특별한 연결이 필요한 탓에 스마트폰과 PC, 워크맨 등 여러 장치와 연결하는 전용 USB 케이블을 준비해 놓았다. 헤드폰의 앰프는 배터리로 작동하므로 쓸 때마다 충전해야 하는 건 좀 불편해 보인다. 여기에 지나치게 비싸부담스러운 HRA 헤드폰에 비해 부담을 확 줄인 MDR-1A와 XBA 시리즈로 촘촘하게 엮은 그물망 전략은 국내 헤드폰 시장 1위를 내년까지 연장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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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앞서 아이유와 Hi-Res 기술 제품을 소개한 소니 제품 발표회의 여진이 다음날 열린 젠하이저 어반 나이트 발표회까지 미치지 않았을리는 없다. 소니에 뒤이어 열린 젠하이저의 기자간담회 시작에 앞서 오히려 젠하이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던 게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젠하이저는 아이유의 여파에 동요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준비한 것을 꺼내보였다. 스타가 없어도 음악이라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려 애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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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하이저의 겨울을 책임질 선수는 어반 나이트. 젊은 층으로부터 고루하고 딱딱하다는 평을 듣고 깨기 위한 젠하이저 모멘텀 시리즈 이후 새롭게 들고 온 어반 나이트 역시 젋은 취향의 헤드폰 구매자들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유행을 따르는 화려함을 버리고 매일 입는 바지처럼 질리지 않는 색의 가죽과 천으로 둘러 색다른 느낌을 주는 데다 스테인리스 일체형 헤어밴드, 접어 다닐 수 있는 알루미늄 힌지 구조라는 대담한 디자인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어반나이트는 만듦새만 아니라 젊은 층이 좋아하는 소리를 담은 제품이다. 되도록 정확하고 솔직한 소리를 깨끗이 듣는 것에 집중해왔던 젠하이저 헤드폰에서 허락되지 않았던 베이스를 강화한 것이다. 마치 비츠처럼 박력 있는 소리를 원하는 이들의 입맛을 맞춘 것이다. 베이스를 강화한 소리는 신나는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에게 어울리지만, 어반 나이트의 스타일이 경쟁사를 자극할 만큼 좋다는 말은 지금 꺼내긴 어려워 보인다.

어쨌거나 곧 다가올 겨울에 소니는 HRA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되기 위한 전략을, 젠하이저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좀더 이름을 알려지도록 서로 다른 방향의 제품을 들고 소비자를 찾는 것은 변함 없다. 소리의 본질과 싸워 얻어낸 제품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두 회사의 제품들이 자기 고객에 접근하는 방법과 메시지의 전달 방법에선 제품 발표회만 봐도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아이유라는 스타를 통해 거리감을 느끼던 HRA 헤드폰에 대중적인 메시지를 심은 소니와 스타 없이 젊은 층을 위한 제품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젠하이저의 뚝심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는 한파가 몰아칠 때 따뜻한 음악이 흐르는 헤드폰은 그 무엇보다 괜찮은 귀마개가 되어줄 것이고, 소니와 젠하이저는 그 선택을 기다리는 귀마개를 내놨다는 점이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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